대화 유형 역할 놀이(Role Play)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네 가지 대화 유형인 애원형, 비난형, 계산형 그리고 혼란형 중에 하나를 택해서 해외여행을 어디로 갈지 정하는 가족회의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비난형 역할을 맡았던 한 참가자는 이런 소감을 남겼다."계산형과 혼란형을 향해 비난해 보았더니 씨알도 안 먹혔어요. 모두 자기 자신의 세계에만 살고 있는 사람 같았어요. 그리고나서 애원형을 발견했죠. 그를 비난을 하자 그는 너무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가 자신의 잘못을 빌고 연약하게 나올수록 그를 짓밟고 뭉개고
지난 가을의 일이다. 한참 추수 중에 '후다닥!' 소리가 나더니 고라니가 튀어나왔다. 새끼로 보이는 작은 녀석도 이삭 사이에서 나왔다. 콤바인 기계가 멈추어 서고 논둑의 농부 둘이 황급히 뛰어 들어갔다. 어미는 허둥대며 콤바인 쪽으로 덤벼들려다가 농부가 가로막자 몸을 돌려 논둑 넘어 개천 수풀로 몸을 던졌다. 새끼도 뒤따라 사라졌다.여기는 '구만리 들'의 남쪽 한 귀퉁이다. 위쪽에 야트막한 산, 아래쪽엔 4차선 산업도로, 좌우엔 2차선 지방도로가 둘러싸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2년 전에 허리께에 새 포장도로가 놓
옛날 어느 곳에 할머니와 아들 부부, 손자가 살았다. 가난이 죄라고, 당시에는 사람이 병이 들거나 늙으면 산 채로 땅에 묻는 풍습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더는 어쩔 수 없게 된 아들은 지게 위에 할머니와, 할머니가 당분간 먹을 음식을 지고, 가시덤불과 나무가 무성한 숲을 헤치며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할머니 손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들이 “어머니, 손에서 왜 이렇게 피가 납니까?”하고 묻자, 어머니는 “네가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릴까 봐 나뭇가지와 가시덤불
오랜만에 딸이 전화했다. 떨어져 사는 장성한 자식의 전화는 신호다. 좋은 일이 있거나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경험에 의하면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은 3대 7 정도, 안 좋은 일일 경우가 훨씬 많다. 그것도 잘 쳐서 그렇다. 이해한다. 나도 젊었을 때, 아니 나이 든 지금도 그렇다. 좋은 일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 가까이 있는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멀리 있는 부모 형제는 훨씬 후 순위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조금 다르다. 차분히 가라앉고 혼자 있고 싶어 지
금요일이면 손자들을 만나러 가기 위한 쇼핑을 한다. 아들네와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사는 우리는 격주로 손자들을 만난다. 녀석들은 만나자마자 내게 범인, 악당, 상어를 시킨다. 저들은 경찰, 정의의 우주 전사, 용감한 선원이다. 그리고 나를 쫓는다. 그렇게 부대끼고 뒹굴며 생기는 것, 그것이 핏줄의 느낌일까. 아들을 키울 때는 사실 크게 느끼지 못한 것이다. 삶이 바빠서? 조금 나이가 들고 바쁨과 치열함을 내려놓아 느낀다니, 새삼스럽다.한 달쯤 전, ‘깨똑!’ 소리와 함께 아들의 메시지가 왔다. 전화기를 속에는 손자 녀석이 뿌듯한
어제 저녁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뿔싸, 줌으로 진행하는 강점 코칭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서둘러 줌(Zoom)에 접속했다. 이미 강의는 끝나고 자신의 강점에 대해 참석자들이 나눔을 하고 있었다.참가자들은 자신의 강점을 이야기했다. 목소리가 힘이 있고 또박또박한 강점, 군대 장교, 대기업 팀장, 회사 대표 등 다양한 경험을 한 강점, 자신은 별로 강점이 없고 평범하다는 이야기 등을 들으며 내 강점은 뭘까 생각해 보았다."'아내가 싫어하는 나'가 제 강점인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차 하며 달려가 불을 껐으나 이미 늦었다. 탄 냄새와 연기가 집안에 가득하다. 냄비 속은 시커먼 숱이 됐다. 간단히 요기할 요량으로 냄비를 불에 올려놓고 잠시 딴짓하다가 벌어진 소동이다.갑자기 화가 난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잦아져서다. 아내가 가끔 그러더니 나도 점점 그런다. 앞뒤 창문을 한참 열어 두어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는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아내의 짜증. 아끼는 냄비만 골라 태워 먹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게 태운 냄비의 뒤처리는 모두 내 몫이다. 아내는 손목이 매우 약하다. 골격이 약한 데다가 산후조리도 제대
연애한다는 딸이 주말인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 있다. 밖으로만 돌고 오리무중이 되어서 저녁만 되면 내 눈이 벽시계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던 녀석이, 방구석에 있다. 애인이 생겼다는 녀석이, 2주째 데이트를 안 하다니, 분명 이상 징조다. 걱정되는 마음에 데이트 없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그냥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잠시 떨어져 있자고 했단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좀 피곤해서"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유추해 보니 며칠 전, 사람 관계가 왜 이리 전쟁 같으냐던 녀석의 푸념이 떠올랐다. 녀석은 요즘